《거인》 / 김언/ 《문예중앙》시인선 (근간)
떨어진 사람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을 알고 있다
죽지 않을 만큼 땅이 파이고 피가 고이고
땅바닥은 뚜렷이 그의 얼굴을 알아본다
죽지 않을 만큼 사람들은 놀라고
괴로워하고 실컷 잊을 테지만,
지상에서 지하로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그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가 떨어진 자리로부터 땅바닥을 치고
달아난 소문이 끝날 즈음 어디선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그보다 더
무거운 나이가 되었을 때, 그는 떨어졌다
때가 되면 쏟아지는 비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한가 싶은 땅바닥엔 그가 남기고 간
얼룩과 행인들의 발냄새 간간이 보도블록을 비집고
솟은 엷은 풀냄새에 섞여 그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다
올려다보면 무심히 발 씻는 소리 내려와 쌓인다
그는 떨어지고 있다
[감상]
시간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고 독특한 시입니다. 마지막 <그는 떨어지고 있다>의 현재진행형이 과거와 미래를 홑겹으로 덮어씌운 모양이랄까요. 기실 미래는 현재와 외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순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자체에 속한 차원을 지칭할 뿐입니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르는 시간적 과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시의 그는 <지나간 미래>를 겪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떨어져 내리는 체공시간 동안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그보다 더/ 무거운 나이>도 상식을 허물어놓는 존재의 직관입니다. 비유 없이 건조한 시어로 감정의 생명체인 <사람>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그 만의 방식으로 이제 <거인>까지 이르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