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에 관해서》 / 구석본/ 《시와반시》 시인선
목격자
그가 나를 보았다고 한다
내가 홀로 중앙로를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아니라고 했다
그곳을 걸어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내가 그곳을 틀림없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검은 옷을 입은 채 비를 맞으며 걷는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고 했다
가을비가 나의 그림자를 끝없이 적시더니
끝내 내가 가을비로
중앙로에 자욱히 내리더니만
홀연히 사라지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젖은 잎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그것은 내가 남긴 흔적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어느새 그의 증언을 인정하고
언젠가 흩뿌려지는 젖은 잎들을
나의 흔적으로 남기고
홀연히 떠날 것이라 말함으로
비로소 그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감상]
섬뜩한 울림이 있는 시입니다. 마치 죽음 이후의 어떤 과정을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나>와, 이것을 이해시키려는 <그>의 진술을 통해 존재에 대한 부질없는 집착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내가 <중앙로>에 있었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그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 이처럼 죽음이란 하나의 추이이며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승사자를 연상하는 듯한 결미도 묘한 여운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