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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1:24

윤성택 조회 수:1982 추천:220

〈겨울 저녁의 시〉/ 박주택/ 《2006 제20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中


        겨울 저녁의 시

        사위가 고요한 겨울 저녁 창틈으로 스미는
        빙판을 지나온 바람을 받으며, 어느 산골쯤
        차가운 달빛 아래에서 밤을 견딜 나무들을 떠올렸다
        기억에도 집이 있으리라, 내가 나로부터 가장 멀듯이
        혹은 내가 나로부터 가장 가깝듯이 그 윙윙거리는
        나무들처럼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에서 나에 대한 나의 사랑도
        추위에 떠는 것들이었으리라, 보잘것없이 깜박거리는
        움푹 패인 눈으로 잿빛으로 물들인 밤에는 쓸쓸한 거리의
        뒷골목에서 운명을 잡아줄 것 같은 불빛에 잠시 젖어
        있기도 했을 것이라네, 그러나 그렇게 믿는 것들은
        제게도 뜻이 있어 희미하게 다시 사라져 가고
        청춘의 우듬지를 흔드는 슬픈 잠 속에서는
        서로에게 돌아가지 않는 사랑 때문에
        밤새도록 창문도 덜컹거리고 있으리라


[감상]
시에서 단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 문장으로 말미암아 주위의 이미지들이 탄력을 받고 이끌려 오는 형상이랄까요. <기억에도 집이 있으리라>에서, 깊은 숨이 느껴집니다. 집은 언제나 돌아갈 곳이기에 <쓸쓸한 거리의/ 뒷골목>은 운명처럼 지나야하는 인연들입니다. 이 시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다면 <지적 통찰력>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기억의 집 창문을 흔들어대는, <서로에게 돌아가지 않는 사랑>은 또 얼마나 이 겨울의 시린 저녁이 될까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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