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 김선우 / 창작과비평사
그녀의 염전
첫눈 내린 어제 저녁 세탁소집 여자가 우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주 운다 차양 밑에 빼곡하게
걸린 옷들 밑에서거나 옆집 애완센터 토끼장 앞에서거나
다른 몸들을 덮어주었을 옷 밑에서 울 땐 조금만 운다 울다가는 긴 장대로 아무 옷이나 꺼내
흔들어보곤 한다 옷들은 위험하게 흔들리고 그녀는 이내 눈물을 그친다
토끼장 앞에 쭈그려 앉아서 울 땐 오래 운다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앉아 오래도록 칫솔
질을 하며 운다 토끼장 속 눈 붉은 토끼가 그녀를 먼저 외면할 때까지
그런 저녁이 있은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그녀의 염전 앞을 가만가만 지난다 다리미 손잡이를
꽉 잡은 오른손 위에 말뚝처럼 포개어진 왼손. 어깨를 들어올리며 그녀는 다림판 위로 온 힘을
모은다
기도하는 제 손을 내려다보는 황량하게 뚫린 두 개의 검은 염전. 당분간은 그녀도 수차를 젓지
않을 것이다
[감상]
때로는 극적인 상황이 시를 매혹으로 이끄는 접점입니다. 이 시에서 세탁소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웁니다. 그러나 그녀가 왜 우는지 시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거겠지요.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내가 군입대하기 몇 달전부터 줄곧, 집 근처 비디오가게의 비디오를 하루에 3편씩 빌려 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극적인 모든 순간들을 그 비디오에서 봤던 게지요. 입대를 며칠 앞두고 시골스럽지 않고 예뻤던 비디오가게 젊은 아주머니가 매일 멍하니 울고 있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동네 분들의 말로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었다더군요. 군에 입대하고 첫 휴가 때 그 비디오가게를 가보니, 치킨집으로 바뀌었고 그녀가 어디로 떠나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왜 그녀의 눈빛이 생각나는 걸까요. 비디오 가게 문 너머 철길 너머 저녁해처럼 멍하니 붉어지던 그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