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하는 사람을 보다/ 박진성/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2.11, 창간호)
싸움하는 사람을 보다
1
달을 움켜쥔 그가 주먹을 날리네 주먹이 스크린 지날 때마다 찢어진 입술은
달빛 속으로 피를 쏟아내네 종로 3街 극장에서 싸움하는 사람을 보네 콘크리
트 바닥으로 눈보라 휘날리고 있었고
따뜻한 욕설이 초대받지 못한 그들의 生을 위안해줄 뿐 싸운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들의 피칠갑한 입술은 은유, 짓뭉개진 양볼다구니는 직유.그렇
다면 저들의 싸움은 내 그리움의 환유네
2
콘크리트 바닥 길을 무작정 달렸어 핏발 선 관자놀이 쥐 뜯으며 눈 쌓여 가
는 길바닥에 누운 하늘에 현기증 이는 달이 걸려 있었어 싸우고 싶었어 내 멱
살 잡고 달빛 환하게 풀리는 입술을, 양볼다구니를 주먹으로 닦아주고 싶었어
격렬하게 내리는 눈송이가 숨기고 있는 열망들, 왜 아픈 지도 모르면서 아팠
던 날들
3
그리고 나는 지금 종로 3가(街) 극장에서 싸움하는 사람을 보네 제스스로의
탄성(彈性)으로 자꾸만 솟아오르려는 의자에 앉아 화염병과 파이프와 붉은
수건을 달빛처럼 뿜어내고 있네
페이드아웃 되는 최루탄의 스무 살이여 엔딩 자막 속에서 다만 뒷골목에 쓰
러질 순 없었다, 적(敵)도 제 얼굴을 가린 종로 한 복판의 극장에서 나는 싸움
하는 사람을 보고 있네
[감상]
주먹 휘두르는 폭력을, 열망의 청춘으로 승화시키는 솜씨가 좋습니다. 시 속의 관객이 화자이듯, 이 시의 관객인 나는 종로3가 허리우드 극장 밑 허름한 골목만 같아집니다. 길 바깥 들통에서 김이 무럭무럭 이는 국밥집 홀로 먹는 뜨거운 국물이 저 싸움만 같았을까요. 카바이트 불빛 아래 돼지스러운 것은 죄다 삶아낸 것이었으므로 삶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