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암에서 1」/ 김재홍/ 2003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中
처용암에서 1
사람들이 떠나고 초병이 사라진 마을에
석유 공단 불빛도 타오르지 않는다
보름 되기 전에도 달은 부서져
물 너울을 타고 물결이 되어
부서진 조각들 빈 마을을 향하고
뱃머리가 묶인 발동선은 원을 그리며
떠나야 할 거리를 재고 있다
그 집에선 아직 토장국 냄새가 난다
갈치뼈 곰삭은 석박지를 놓고 아침을 먹던
곰보삼촌의 살냄새가 난다
삼촌을 버린 여자와
삼촌이 버린 세상의 끝에서
처마는 돌담에 기대어 주인을 추억하고
바다는 지치지도 않고 밤새
마을이 끝난 곳에서 주름져 있다
겨울 세죽은 봉분이 내려앉은 무덤처럼
바다를 향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감상]
풍경을 새로운 대상으로 바꿔내는 비유가 인상적입니다. '달은 부서져/ 물 너울을 타고 물결이 되어'라든지, '바다를 향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모양이라든지 곳곳에 표현의 신선도가 느껴집니다. 떠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란 이처럼 쓸쓸한 것이라고, 버리는 것과 비우는 것의 간극에서 추억은 또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구나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