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움직이는 정물 - 김길나

2003.09.26 17:53

윤성택 조회 수:1085 추천:183

「움직이는 정물」/ 김길나/ 『문학마당』2003년 가을호


        움직이는 정물


        꽃병이 탁자 위에 놓여 있으나
        이 두 정물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

        행당동 성당은 언덕 위에 있다
        성당은 언덕의 가파른 경사와 무관하다

        언덕길보다 낮은 지붕 아래서 생의 문 하나가
        닫히는 소리, 길잠 자는 이가 낮술에 취한
        화해하지 못한 과거와 현재가 고함치며 다투는
        소리, 종일 불협화음은 언덕을 오르내린다
        언덕은 불안한 음계다 그는 부서졌다
        언덕을 밟는 발 밑은 파열음이다 그는 쪼개졌다
        과거의 문이 열리고 이목구비 수려한 그가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걸어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남루한 길잠 곁에 나란히 선다
        해가 빠져나가 버린, 분리된 자아(自我)가 사이에
        노을이 걸린다
        달뜨는 밤마다 파괴되지 않는 추억이
        언덕에서 내려오고 있다


[감상]
'언덕은 불안한 음계다'에서 오래 시선이 머뭅니다. 서로 상관하지 않는 두 자아에 대해, 세상은 항상 다른 이면을 보여줍니다. 한 번 보고 또 다시 찾아 읽어보게 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91 프랑켄슈타인 - 김순선 2004.06.17 1088 174
190 연두의 시제 - 김경주 [1] 2009.12.02 1087 119
189 공중부양 - 박강우 2004.04.12 1087 225
188 처용암에서 1 - 김재홍 2003.09.24 1087 195
187 참붕어가 헤엄치는 골목 - 김윤희 2003.01.29 1087 196
186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2011.01.12 1086 78
185 선명한 유령 - 조영석 2004.11.15 1086 165
184 음암에서 서쪽 - 박주택 2002.09.24 1086 240
» 움직이는 정물 - 김길나 2003.09.26 1085 183
182 자유낙하운동 - 권주열 2003.12.20 1084 205
181 어도 여자 - 김윤배 2007.06.07 1083 138
180 건조대 - 최리을 2002.03.25 1081 180
179 서치라이트 - 김현서 [2] 2007.03.13 1080 168
178 과월호가 되어 버린 남자 - 한용국 2004.06.21 1080 188
177 오래된 가구 - 마경덕 2003.03.10 1080 200
176 고가도로 아래 - 김언 2003.07.09 1078 221
175 배꼽 - 이민하 2002.12.02 1078 191
174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077 99
173 싸움하는 사람을 보다 - 박진성 2002.11.21 1077 178
172 거미의 길은 젖어 있다 - 김승원 [1] 2002.12.11 1076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