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낙하운동」/ 권주열 / 『시향』2003년 12월호 (지난 계절의 詩 다시보기 中)
자유낙하운동
공기의 저항 때문에 우울한 사람이 있다. 늘상 머리가 아픈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구는 쉼없이 자전을 반복했고 의사는
허공에 달린 달을 처방했다. 그는 날마다 착 까라지는 약을
먹고 무중력을 꿈꾸다가 마침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정
말일까? 주공3차 옥상에 신발만 가지런히 벗어 놓은 과일 장
수 황씨. 언제나 명랑하던 그가, 그렇게 부산떨던 그가, 지방
신문 한 귀퉁이에 스며들다니. 그는 그날 사다리를 타고 올
라가 어쩌면 사과 같은 달을 땄을지도 모른다. 귤 같은 달을,
바나나 같은 초승달을 다-아 땄을지도 모른다. 구청직원의
호각소리에 시장바닥 이리저리 내몰리던 황씨의 리어카 그
날밤 와르르 별이 다 쏟아졌을지도, 달님이라 불리던 그 애,
드디어 상봉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형사들은 현장을 재차
오르내리며, s-떨어진 거리. t-떨어지기 시작한 때부터의 시
간. g-중력가속도. v-초기속도. 에 대해서만 정밀 검증중인.
[감상]
과일장수 황씨가 앓던 우울, 그리고 그의 죽음. 이 시는 황씨의 자살사건을 '달'과 결부시키면서 상상력을 뻗어간 시입니다. 관심 있게 들여다본 곳은 초반부 우울에서 사다리로 옮겨가는 연결고리입니다. 전혀 연결될 수 없는 별개의 것들을 '달'의 처방을 통해 전격화 시킨 것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형사들의 수사가 말해주듯 한 사람의 죽음조차 과학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마는 현실이, 우울한 것은 황씨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