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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 여자 - 김윤배

2007.06.07 18:04

윤성택 조회 수:1083 추천:138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 김윤배 (1986년 「시문학」 및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 《문학과지성 시인선》(2007)


        어도 여자

        남자는 팅팅 불어 떠올랐다
        젊은 여자 갈대밭을 달려나간다
        더러운 소문은 한동안 갯벌을 떠돌았다
        어도횟집 간판이 먼 바다를
        내다보며 늙어갔다
        갈대밭이 조용히 일렁인다
        시간이 갈대 사이를 통과하는가 보다
        갈대꽃이 환하게 피어오르고
        잎들 빠르게 갈색으로 변한다
        어도횟집 간판 한쪽이 기운다
        끝내 균형을 버리지 않고는
        시간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갈대꽃이 몇 번이나 피고 졌는지
        늙어 다시 태어난 여자
        느린 걸음으로 갈대밭을 기어나온다
        물속에서 남자가 젊은 여자의 허리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이 여자에게 갈대밭은 없었을
        어도가 육지를 향해 떠난다
        늙은 여자 떠나는 어도를 지켜보다
        풀썩 주저앉는다


[감상]
경기도 화성 끝에 어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예부터 고기가 많은 섬이라 하여 그리 붙여졌지요. 그러나 1994년 시화지구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지나친 개발 때문일까요, 어장의 기능은 완전 상실하여 갈대만 무성한 폐촌으로 전락한 곳입니다. 이 시는 한 남자의 죽음과 이를 암시하는 일상이 행간마다 스산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갈대의 구부러지는 탄력이 <물속에서 남자가 젊은 여자의 허리를/ 풀어주지 않았다면>의 정황으로 암시되면서 <늙은 여자>가 어도를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사연으로 그러모아집니다. 모두들 떠나갔지만 끝내 떠날 수 없는 삶이 애잔하게 <생의 황무한 소멸>로 귀결되는, 그런 시간의 초월이 <혹독한 기다림>으로 이룩되는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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