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가스관 묻힌 사거리 - 최승철

2002.07.02 15:12

윤성택 조회 수:1075 추천:186

  70년대 生 12인 시 中 / 최승철/ 『문학과창작』7월호  


  가스관 묻힌 사거리



  병원은 가스관이 묻힌 사거리를 품고 있다 포크레인은 가스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파
고 애완견을 가슴에 품은 미망인은 신호를 기다린다 인부들의 손짓이 기사에게 세밀
한 부위를 알려준다  농협 건물의 옥상엔 버리기 쉽지 않은 건축 자재들이 쌓여 미망
인은 애완견의 머리를 자식처럼 어루만진다  동네 어귀 그 흔한 소문으로  나는 그녀
의 치부를 동정했다 화재는 1년 전 일이다 보도블록의 잡초처럼 발길 드물게 솟는 상
처들 섣부른 치기였다  관을 통해 가볍고  충동적인 가스는 땅속을 흘러 다니다 돌발
적이다 담을 타고 오르는 등나무 줄기들 집요하다  나는 어제 저 사거리 한복판에 누
워 있었다  나의 자학은 막다른 자괴에 있다  인부들은 낮술을 먹고 미망인은 횡단보
도의 선을 밟지 않으려 엉거주춤 걷는다  가스관 위로 포크레인은 흙 한줌씩 넣는다
수술 자국 위로 돋은 실밥을 당겨보면  달빛 촘촘히 올라온다 매설은 애증이거나 욕
망이다


[감상]
여인은 낙태수술을 했던 것일까요. 가스관 매설과 욕망을 은유 해낸 이 시는 서사와 맞물려 촘촘한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네 삶이란 이처럼 봉합된 욕망 위를 거닐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드문드문 아스팔트로 덧씌워진 상처의 길들, 그런 날들은 또 얼마나 따끔거리며 아릿했을까요. 거대한 욕망의 구근에서부터 조금씩 새어나오는 가스 불들, 날것을 익게하는 저 낯익은 욕망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71 그곳 - 이상국 2002.11.27 1076 216
170 정비공장 장미꽃 - 엄재국 2004.11.01 1075 183
» 가스관 묻힌 사거리 - 최승철 2002.07.02 1075 186
168 오래된 약 - 백인덕 2003.08.26 1074 166
167 스피드 사랑법 - 안차애 2002.11.01 1073 185
166 폭설 - 박이화 2003.01.08 1072 172
165 정류하다 - 조동범 2003.10.24 1071 170
164 다비식 - 신용목 2002.09.13 1071 219
163 찰나의 화석 - 윤병무 [1] 2002.11.13 1070 168
162 여주인공 - 이희중 2002.02.16 1070 173
161 살가죽구두 - 손택수 2004.04.19 1069 176
160 적사과 - 손순미 2002.05.10 1069 179
159 야생사과 - 나희덕 2009.11.23 1068 124
158 녹색 감정 식물 - 이제니 2011.01.24 1067 123
157 장례식장의 신데렐라 - 이지현 2003.09.04 1067 165
156 나는 여기 피어 있고 - 이순현 [1] 2002.11.15 1067 172
155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연탄] - 이기인 2002.11.05 1066 172
154 오조준 - 이정화 [1] 2004.12.06 1065 203
153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 고영 [3] 2005.04.21 1064 181
152 비단 짜는 밤 - 정상하 [1] 2003.10.25 1063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