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生 12인 시 中 / 최승철/ 『문학과창작』7월호
가스관 묻힌 사거리
병원은 가스관이 묻힌 사거리를 품고 있다 포크레인은 가스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파
고 애완견을 가슴에 품은 미망인은 신호를 기다린다 인부들의 손짓이 기사에게 세밀
한 부위를 알려준다 농협 건물의 옥상엔 버리기 쉽지 않은 건축 자재들이 쌓여 미망
인은 애완견의 머리를 자식처럼 어루만진다 동네 어귀 그 흔한 소문으로 나는 그녀
의 치부를 동정했다 화재는 1년 전 일이다 보도블록의 잡초처럼 발길 드물게 솟는 상
처들 섣부른 치기였다 관을 통해 가볍고 충동적인 가스는 땅속을 흘러 다니다 돌발
적이다 담을 타고 오르는 등나무 줄기들 집요하다 나는 어제 저 사거리 한복판에 누
워 있었다 나의 자학은 막다른 자괴에 있다 인부들은 낮술을 먹고 미망인은 횡단보
도의 선을 밟지 않으려 엉거주춤 걷는다 가스관 위로 포크레인은 흙 한줌씩 넣는다
수술 자국 위로 돋은 실밥을 당겨보면 달빛 촘촘히 올라온다 매설은 애증이거나 욕
망이다
[감상]
여인은 낙태수술을 했던 것일까요. 가스관 매설과 욕망을 은유 해낸 이 시는 서사와 맞물려 촘촘한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네 삶이란 이처럼 봉합된 욕망 위를 거닐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드문드문 아스팔트로 덧씌워진 상처의 길들, 그런 날들은 또 얼마나 따끔거리며 아릿했을까요. 거대한 욕망의 구근에서부터 조금씩 새어나오는 가스 불들, 날것을 익게하는 저 낯익은 욕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