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하다」/ 조동범/ 현대시학 2003년 10월호
정류하다
가판 가득 펼쳐진 신문이 바람을 맞는다. 신문은 날을 세워 바람을 가르
고, 바람은 신문을 들춰 몇 개의 부음을 읽는다. 가판에 세상을 펼쳐 놓은,
버스정류장의 고요한 매점. 신문 가득 죽음을 담고, 한낮의 지루한 폭염
을 견디고 있다.
길 잃은 고양이가 길을 건너다 납작한 무늬가 되는 쓸쓸한 공휴일. 바닥
을 향해 한없이 납작해지는 폭염 위로 떠나지 못한 죽음이 서성댄다. 바
닥을 향해 한없이 납작해지는 고양이. 어디로 가려는지, 고양이는 다리를
들어 하늘을 움켜쥐고 있다.
가판 가득 펼쳐진 신문이 죽음을 만지작거리는
버스정류장의 고요한 매점. 한낮의 폭염을 견디며 지루하게 고양이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몇 개의 부음을 읽으며
[감상]
고양이의 죽음과 신문의 부음, 그 둘을 다 목격할 수 있는 정류장 컨테이너박스의 매점이 한여름 폭염 속에 크로키 되듯 그려져 있습니다. 무료하고 지루한 하루를 감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솜씨가 좋습니다. 하늘을 움켜쥔 채 형체도 알 수 없는 무늬로 스러져 가는 고양이의 죽음 같은 것. 그 위를 활자를 읽듯 지나치는 수많은 바퀴의 검은 눈동자들. 이것이 우리가 머무는 일상의 진실일까요. 정류하다, 제목이 말해주듯 우리는 이 생애에 잠시 몸을 빌려 머무는 정신의 가판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