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공장 장미꽃」 / 엄재국/ 《현대시학》2004년 11월호
정비공장 장미꽃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의
정비공장 담장에 장미가 피어있다
가시로 기둥을 죄고 있다
지난 밤
몇 잔 소주에 눈 풀려진 정비공 하나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점심 먹으러간다
자동차 하체가 내려놓은
정오의 골목을 돌아 밥집에 앉아있다
수저로 입을 죄고 국물로 목을 풀고 있다
냅킨으로 어물쩡 입을 닦고
돌아오는 길 위에 튕겨져 나온 나사 하나
발로 걷어차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느슨하게 조여져있다니.
태양이 풀어놓은 한낮을 점검하고
머리 헝큰 아내의 달이
저녁을 죄고있는 퇴근 무렵
길 건너 불야성의 네온 빛에 서성이는
마음은 더욱 헐겁다
세상을 한 바퀴 다 돌아도
언제나 한발자국 비켜서는 생
조여진 너트가 풀려지듯 정문을 나서다
장미 꽃잎에 코를 박고 향기를 흠흠 거리는 순간
누구인가
몽키도 스패너도 없이
나를 죄었다 풀었다 하는 이
[감상]
세상을 자신 만의 시선으로 어떻게 바꿔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시선이 참신하느냐 상투적이냐는 시인의 직관에 달린 것이겠지요. 이 시는 정비공의 닦고 조이는 삶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기계문명에 살고 있는 화자조차 기계로 설정하는 마지막 연은, 그 의미와 더불어 ‘장미’라는 서정적 이미지를 뒷받침해 줍니다. 발상과 더불어 시적 재미가 있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