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김영승/ 나남출판
강풍(强風)에 비……
대장부(大丈夫)ㅣ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섹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섹스는 조금
좋아한다
그리고
아무 여자나 나하고 섹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하고 섹스할 수 있는 여자는
없다
그것은 내가
마치 {몽실언니}의 작가
동화작가 권정생선생(先生)처럼
망가졌기 때문이다
망가졌긴 망가졌는데
다 망가진 건 아니고
그 {몽실언니}의 작가
동화작가 권정생선생(先生)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망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있다
인천의
주안도서관 문예반
부평문화원 시창작반
다 주부(主婦)들이다
나는 그들과
[김영승과 혼수상태]라는
록 그룹을 결성해
끼약끼약 공연하고 있다고
생각 중이다
이 11월
시화전(詩畵展)을 준비하고 있고
작품집(作品集)도 준비중이다
두 군데 한 달 수입(收入)은
약 45만원
그것으로 호구(糊口)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강의를 나간다면
그건 좀 슬프다
정(情)도 들었고
또 그들 일신상(一身上)에 있어
걱정도 한다
강풍(强風)에 비 내리던
어제는 그 중(中)의 일인(一人)이 한 턱을 낸다고 해서 다 함께
[영월보쌈]에 갔다 고향(故鄕) '진영(進永)'에서 딴 것이라고
감(枾)도 한 봉지 싸 주었다
돼지고기 보쌈에
고기 버섯 오징어 등 잔뜩 들어간 해물파전에
역시 고기 버섯 등 잔뜩 들어간 빈대떡에
함지박만한 그릇에 담아 떠서 먹는
통조개 새우 등 잔뜩 들어간 해물칼국수에
이 인천(仁川) 그 해변(海邊)의 묘지(墓地)에 사는 내가
완전 해물(海物)이 되는 줄 알았다 들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썩썩 비벼먹는 보리밥에 호박죽에 새우젓에
막장에 찍어 먹는 고추 마늘 등등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이루 말할 수 없는 음식을
앞에 놓고
나는 그저 소주만 몇 잔(盞) 마셨다
여전(如前)히
강풍(强風)에 비 내리는 이 새벽
배가 고파 밥을 차려 먹는다
나는
우리 밭에서 솎은 배추로 끓인
배추국이 좋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너무너무 좋다
이건 또 어디서 났을까
씀바귀나물 미역무침
다 집어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에 썩썩 비벼
잔뜩 먹었다
귀양가서도
심심하면 역군은(亦君恩)이샷다 어쩌구 한
그 조선조 옛 시조(時調)의 주인공들처럼 무슨
쓴 데온 믈이 고기도곤 마시 이셰* 니미
푸새엣것인들 운운
예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먹다 보니
먹고 싶었다
어제 낮에
둘러싸여 구경하던
그 [영월보쌈] 음식들
나에게 있어서
좋은 음식은
그저 하나의 이미지고
'관념'이다
ponytail, pigtail의
소녀(少女)같은
그 주부(主婦)들
나는
성교(性交)를 하는 건지 설교(說敎)를 하는 건지
곤(困)히 잠든 아내와,
관통(貫通)해서 뽑아놓은
어린 아들이,
오늘은 내가
'얼마'를 갖고 왔을까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대화(對話)하듯 평화(平和)롭게
누워 있다
아침에 받은
{학산문학} 편집비 20만원이 든
봉투를
그 머리맡에 놓고
방문(房門)을
살며시 닫고
나왔다
들기름, 참기름
그리고
들깨, 참깨…….
파바바바바바바바박……
괜히,
저,
'강풍(强風)에 비……'만이
파바바바바박 동동촉촉(洞洞燭燭), 반짝반짝
금강석(金剛石)같은, 가도가도 금강석(金剛石)뿐인, 금강석(金剛石)의 평원(平原), 그 금강석(金剛石) 강(江)가의 금강석(金剛石) 자갈밭을 강타(强打)하는 천둥
번개, 벽력(霹靂)같은
칠흑(漆黑) 속으로 뛰쳐나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렇게 칠흑(漆黑)의
부조(浮彫)가 되고 싶었다
화석(化石)이
되고 싶었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칠흑(漆黑)'은
나의 삽입(揷入)을
거부하고 있었다
완강히,
나의
강간(强姦)을
들깨, 참깨
그 수녀(修女) 같은, 아니 수녀원(修女院) 같은
꽃을
향(香)을,
내 '자지'는.
* 鄭 澈(정 철)
[감상]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참 많습니다. 이 어눌한 독백, 읽어 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 사이 마음 한켠 스미는 진정성. 김영승 시인은 그런 색깔을 지녔습니다. 섹스와 자지를 서슴없이 발설하는 솔직함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세상은 욕망으로 이뤄진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