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한혜영/ 시작시인선 4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공무원을 하던 동생이 그 짓을 때려치우고 태평양을 건너 뉴욕으로 이주,
세탁소 주인이 되어버린 뒤 일년 내내 태평양 주름살과 씨름을 하고 있다
눌러도 눌러도 좀처럼 펴지지 않는
태평양 그 시퍼런 치마폭 다려야할 물굽이는 첩첩이 밀려오고, 질 나쁜
가루비누처럼 시원찮은 영어는 좀처럼 거품이 일지 않아 다 때려치우고,
돌아갈까?
니 맘 내 다 안다,
안다 하면서도 치마폭 솔기 하나 잡아주지 못하는 이 누나도 사실은 엉망
진창으로 구겨진 바다를 입은 채 십년 내내 미친것처럼 출렁거렸다 어차피
이쪽과 저쪽 끝에서 팽팽하게 잡아주지 못할 바에야, 동생아 바다는 구겨
진 채로 펄럭일 수밖에 없으니
펄럭이게 내버려두거라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다리미 바닥에 쩍쩍 들
러붙는 바다가 있어 오히려 다행한 일 아니겠느냐 아니겠느냐
이런 소리를 내며 물결이 밀려온다는 거, 머지않아 듣게 될 것이니
고스란히 듣게 될 터이니
[감상]
좋은 시에는 자아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심안(心眼)이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시선을 잘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평양과 세탁소라는 서로 다른 제재를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울림으로 자리하게끔 합니다. 이는 "동생과 세탁소"라는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본질을 심미적으로 투영할 수 있는 시인의 순수한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감상이 아닌, 이런 감성이야말로 우리가 지켜 가야할 것이기도 하고요. 태평양을 다릴 수 있는 시인의 활달한 상상력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