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럭거리는 / 송종규/ 『현대시학』9월호(2001)
쿨럭거리는 완행열차
마스크를 낀 남자가 처방전을 내민다 백지 안에 박혀 있는 빽빽한 약들 그의 삶도, 모래알처럼 많은 순간 아프고, 열나고, 쿨럭거렸으리
베고니아가 입을 막고 재채기를 한다
마스크가 가린 한 세계의 저쪽
완행열차처럼 긴 세월이 창에 불을 켜고 빼곡한 약들 사이 빠져나간다 그 너머 너덜너덜한 광목천이 삼성자동차 운전학원을 연호하고 있다 완벽한 시설! 합격보장!
두 주먹이 불끈불끈 가로수를 쥐어박는다
너도 아프구나,
신호등이 기우뚱 이마를 짚는다
뭉게 구름처럼 뭉쳤다가 다시 흩어지는, 마스크를 낀 한 무리의 사람들
나는 도무지 그들의 처방전을 이해할 수 없다
허공 모서리 길게
바퀴소리 새겨진다
[감상]
이 生의 처방전은 무엇일까요. 아프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고, 느낀다는 것은 시간 위에 있다는 것일 터인데요. 그래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의 처방을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