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 유문호 /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
거리에서
서 있었다.
잡음 심한 핸드폰 속에서
뚝, 뚝, 끊겨 앞뒤가 모호한 대화 속에서
뇌수를 적시는 햇빛 속에
부서지는 사람들 틈바구니
이리저리 돌아누워도 편치 않은
도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가판대 나란히 앉아
어느 것이 사실보도인지 모를
조간신문들이 울며 지나갔고
까만 리무진
자동차가 근엄한 웃음을 짓고 지나갔다.
소시민의 얼굴처럼
한 떼의 비둘기가
아프게 먹이를 쪼며 지나갔고
박보장기 앞,
쪼그리고 앉아 묘수를 생각하는 사람들
더 이상의
무릎을 탁, 치는 묘수는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이상한 일이다.
그 언젠가도 이 거리를 본 듯 하다.
[감상]
가끔 이처럼 낯선 곳인데도 과거에 와본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게 꿈이었는지 초현실적인 어떤 잔상 같은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문득문득 생각에 잠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러한 내면의 풍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삶 또한 묘수를 바랄 수도 없는 걸까요. 누군가 수를 놓는 순간, 씨줄과 날줄의 확률은 또 한번 교직이 되면서 수많은 인연의 피륙에 덧대질 겁니다. 하여 묘수도 잘 짜여진 필연일 것. 마지막 연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