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엽수림 영화관/ 문성해/ 『현대문학』2003년 4월호
활엽수림 영화관
그 건물의 옥상에는
뿌리를 비좁은 화분 속에 쑤셔박은 나무들이
오늘도 시퍼렇게 자라고 있다
그 옥상 바로 밑에 있는 오래된 상영관엘 간 적이 있다
그때 화면 위로 심하게 내리던 뿌리들은
실은, 옥상에 있던 나무들 뿌리였지 않았을까
뿌리들은 시멘트를 뚫고 내려와
영화 속 우주선이나 항공모함을 타고
이 시간에도 유유히
세계를 누비고 있지나 않을까
그래서일까
그 건물의 옥상에는
사철 시퍼런 이파리들이 지겹지도 않은 듯 팔 벌리고 서 있다
뿌리들은 어느새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 흰자위에도 가늘게 뻗어 있다
그들은 언제부턴가 눈에서 눈으로
푸른 상영관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건물의 옥상에는
뒤엉킨 영화필름 같은 활엽수림이 있다
바람이 불 때면
어둠을 횡단한 뿌리들 모험담들로
무수한 이파리들이 술렁거린다
[감상]
이 시는 영화관 옥상 활엽수들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상상력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영화관 화면 낡은 필름으로 생기는 현상도 그렇고, 사람들 눈 속 실핏줄까지 죄다 '뿌리'로 환원시키는 솜씨도 설득력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상상력은 상식으로 굳어진 일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겠지요. 이런 발견은 아마도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이 함께 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