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를 임신한 여자」/ 장인수/ 『시인세계』2003년 가을호, 신인상 당선작 中
포도를 임신한 여자
가게에서 아내가 포도를 산다
포도를 집어드는 순간 포도알이
엄마- 하고 부른다
너무 놀라 두리번거리는데 다시 포도알이
엄마- 하고 부른다
포도알은 아내의 손가락에 매달리고
어느새 넝쿨손을 뻗어
아내의 몸을 덮는다
아내의 봉긋한 가슴은 시큼한 포도가 된다
자궁 속에는 아직 덜 익은
청포도가 자라고 있다
[감상]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상상력이 중반 이후 힘을 실어 줍니다. '아내'를 통해 또 하나의 잉태를 연결시킨 이 시는, '포도'와 '태아'를 싱싱한 이미지로 재해석 해냅니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시는 단정해야 할까요. 요설스러운 시대에 단아한 소품의 시가 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