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나 슬픔』/ 조항록/ 『시작』시인선
시
기차길 옆 오막살이 나는
나는 잠을 깬다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그대
기적소리에 놀란 텃새들
흘낏 살피며 날아간다
겨우내 열려 있는 내 창문
웅크리고 굳어가는 내 표정을
언제였던가 붉은 장미꽃 한 송이
내 루핑의 지붕으로 활활
모조리 태울 듯 떨어지던 그날
장대 같은 고드름이 자라던 좁은 방 실내는
정물화였다 나는
기착지도 모르는 그대의 질주에
잘게 몸을 뒤척여보는 것이 전부였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나는
나는 깨어 그대에게 승차할 수 있는
차표를 다시 생각한다 구겨진
셀 수 없이 찢어버리기도 했던
그 한숨나는 기억들
지금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내달리는 그대
나는 불면에 취하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
그대가 내 곁을 지날 때마다 나는
나는 싸늘한 레일처럼
모르게 잠을 깨다
모르게 쓸쓸하다
[감상]
나의 시골 옛집은 멀리 기차길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지나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그것이 詩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 詩는 그런 아련한 느낌을 과감히 시로 연결시키는 솜씨가 좋습니다. 누구의 표현대로, 터널처럼 외로웠던 것도 이 詩가 지나간 흔적 탓일 겁니다. 쓸쓸한 그 정조가 나를 이 밤에 귀 열게 했으니 詩는 시시때때로 나를 깨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