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의 음표」 / 배한봉 /『신생』봄호 (2003년)
꽃 속의 음표
꽃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제 몸 속 암술 수술의 음표들이 가락
퉁기기 때문이리, 벌 나비 찾아드는 것 또한
그 가락 장단이 향기를 뿜어내기 때문이리
그대여, 사랑은 눈부신 그 음표들이
열매 맺고 향기롭게 익는 일과 같을 것이니,
우리는 어떤 가락 장단으로 세상을 걷고
어떤 열매를 키우며 서로 바라보는 것이냐
나 오늘, 만개한 복사꽃을 보며
내 몸 속에서는 어떤 음표들이 가락을 퉁기는지
궁금하여 햇살 속에 마음 활짝 펼쳐본다
[감상]
표현의 새로움보다 인식의 새로움이 더 맛깔스러운 시입니다. 꽃 속 암술, 수술을 음표로 비유하면서 상상력이 너울거립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들이 모두 이런 음표들의 장단으로 인하여 살아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꽃의 관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화자의 몸 속까지 꽃과 합일화 시키는 마무리도 좋네요. 요즘은 문장을 비틀어 낯설게 하는 방식보다, 시 그 자체가 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틀'을 비트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읽힙니다. 눈 크게 뜨고 어디한번 시도해봄직한 詩 쓰기의 계절, 봄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