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사당동에서 총알택시를 타다」/ 정 겸/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비 오는 날 사당동에서 총알택시를 타다
예고도 없이 하늘을 이탈한 빗줄기가
착암기처럼 어둠을 조각조각 바수며
사당동 네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빗방울의 비명 소리로 가득찬 황톳물의 도심
사람들은 농성장을 헤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질곡의 터널을
빠져나가려는 택시들이
소총에 장전된 탄환처럼 사선에서
줄지어 서 있다가
섬광처럼 튕겨져 나간다
속도를 헤아릴 수 없는 총환 속에서
육신은 중심을 잃고
영혼만이 허공에 매달려 춤을 추고 있다
빗속을 스치는 몇 번의 곡예가 시작 될 때마다
젊은 날 때묻은 기억들은 끊어지고 또 이어지고
흑백의 영상이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다
반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듯
아직도 어느 술집 골목을 헤매고 있는 얼굴들은
삶의 빈자리를 도수 높은 알코올에게 내어주고
낯모를 사수에 몸을 맡긴다
지금, 나는 목표를 향한
정조준의 요행만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감상]
사당 즈음이라면 수원이나 서울외곽으로 가는 택시들이 많은 곳이지요. 이 시는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운 날 승객을 지켜보는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총알이 나아가는 속도와, 택시와의 흐름이 긴장감 있게 표현되었고요. 그 빠른 속도로 인하여 육신을 붙잡고 있지 못한 술 취한 영혼도 있을 법한 '육신은 중심을 잃고/ 영혼만이 허공에 매달려 춤을 추'고 있다는 표현도 눈 여겨 볼만합니다. 죽음을 담보로 속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타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마무리는 결국, 우리가 요행히 얼마나 많은 죽음의 순간을 지나쳐왔나를 깨닫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