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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이 사는 동네 - 안성호

2004.01.02 10:00

윤성택 조회 수:1048 추천:187

가스통이 사는 동네/ 안성호/ 2004년 경향신문 신춘 당선작





가스통이 사는 동네


  빈집의 풍경을 텔레비전이 우주로 송출한다.  텔레비전 위로 유리컵이 있고
그 속에서 감자가 싹이 나고 잎이 나서 나무가 되었다. 유리컵 속에서 감자는
죽고 감자만한 유리컵이 나무에 열렸다.  그 유리컵마다 바다가 출렁인다. 푸
른 바다를 가르며 달력 속으로 노란 수상스키 한 대가 사라진다. 손을 흔들어
대는 벌거벗은 남녀의 벗어 놓은 옷이 달력 곁, 행거에 걸려 있다.  여자의 빨
간 치마를 남자의 양복 上衣가 껴안고 있다. 벗어 놓은 양말이 화장실로 걸어
가고 화장실에 놓인 세탁기에선 양복 下衣가 길거리에서 묻혀온 노래를 쿨렁
거린다 똑똑, 세일즈맨이 빈집에 노크를 하고 돌아선다. 똑똑, 물탱크에 물소
리가 들린다. 수압은 낮고 지붕은 점점 무거워진다.

노란 물탱크와 가스통이
퇴락한 집 모퉁이를 돌아오는 빛을 베고 지붕에 누워 하늘을 본다.
오백 마리의 양
구백 마리의 흰 오리가
줄을 지어
하늘을 걸어간다.



[감상]
신춘 당선 시들을 훑어보니 올해의 신춘문예의 경향은 '옛것에 대한 경외감'인 것 같더군요. 오래된 것에서 자아를 찾는 행보라고 할까요. 속도나 첨단에 길들여지다보니 절박한 상상력은 유적이나 유물에서 가족과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폐타이어도 오래 방치되면 유적입니다. 이 시는 그런 것들과는 다르게 상상력이 마음에 드는 시입니다. 1연을 읽다가 덩달아 시선이 트입니다. 가스통이 매달린 산동네의 갑갑한 집에서 호기롭게 시선을 열어 놓은 방향성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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