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네트워크 - 정학명

2004.06.22 17:16

윤성택 조회 수:1037 추천:177

「네트워크」/ 정학명/ 제7회《시산맥상》수상작

        
        네트워크
        
        거미의 기다림은 고요하다
        빛으로 가는 길목의 지도를 펴들고
        한쪽 발을 팽팽한 거미줄에 가만히 얹어 놓고
        거미는 붕붕거리는 밤곤충들의 날개소리를 듣는다
        
        거미는 빛의 길목을 안다, 그러므로
        빛으로 오르는 모든 길목에 거미줄을 편다
        빛이야말로 밤곤충의 나침반임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밤곤충들은 어둠 속 저의 집으로부터
        영혼을 사로잡는 빛을 향해 날아오른다
        꿈의 방향이 너무도 명백한 그들은
        갑작스런 거미의 투망질을 피하지 못한다
        
        푸드득거림도 잠시
        몸을 뚫고, 거미의 빨대는 꽂힌다
        거미줄에 꽁꽁 갇힌 채
        그들은 둥근 죽음의 고치가 되어버린다
        
        전봇대를 세우러 다닌 적이 있었다
        거미의 똥구멍이 되어서
        힘껏 거미줄을 짜내고 있었다
        
        지금 그 거미줄에 아들놈이 걸려 있다
        어둠 속에서 움찔, 거미가 발을 내딛는 게 보인다        


[감상]
거미의 생태와 먹이사슬을 치밀하게 관찰한 시입니다. 그 안에서 빚어지는 빛에 관한 사유, 또 더 나아가 우리네 삶에까지 아우르는 힘이 느껴집니다. 특히 '전봇대'와 '아들'로 전환되는 시적 환기는 신선함을 주는데, 자연에서 나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거미줄에서 아들의 목격이 깊이를 더하게 합니다. 먹이사슬과 약육강식의 일상이 어디 이곳뿐이겠습니까.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31 석양리 - 최갑수 2002.05.23 1053 182
130 알쏭달쏭한 소녀백과사전 / 흰벽 - 이기인 [2] 2003.08.29 1051 176
129 막돌, 허튼 층 - 이운룡 2004.12.07 1049 202
128 꽃 속의 음표 - 배한봉 2003.04.23 1049 187
127 술병 빗돌 - 이면우 [1] 2003.03.18 1049 176
126 가스통이 사는 동네 - 안성호 2004.01.02 1048 187
125 산딸나무 - 고현정 2003.04.28 1048 167
124 소각장 근처 - 장성혜 2009.03.18 1047 110
123 수사 밖엔 수사가 있다 - 최치언 2002.05.20 1046 209
122 드라큘라 - 권혁웅 2004.01.08 1044 187
121 비 오는 날 사당동에서 총알택시를 타다 - 정 겸 2003.11.03 1044 167
120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042 105
119 탈피 - 박판식 2003.03.11 1042 208
118 폭설 - 심재휘 2003.01.22 1042 169
117 모기 선(禪)에 빠지다 - 손택수 2002.07.26 1041 187
116 시 - 조항록 2002.11.20 1039 163
115 25時 체인점 앞에서 - 최을원 2003.03.12 1038 172
» 네트워크 - 정학명 [1] 2004.06.22 1037 177
113 염전에서 - 고경숙 2003.06.26 1035 177
112 동사자 - 송찬호 2010.01.09 1032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