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를 방석 삼아/ 이정록/ 『문학과 사회』가을호(2002)
산 하나를 방석 삼아
단풍나무 아래에
돼지머리가 버려져 있다
돼지는 일생을
서 있거나 누워 지낸다
앉아 있을 경우는, 오직
새끼를 낳은 암놈이
앞발만 세우고 비척거릴 때다
돼지머리는
제대로 한번 앉아보려고
목덜미 아래를 버린 것 같다
선지피는
단풍잎이 다 들이마셨나
도끼가 지나간 자리로
산 하나를 꿰차고 있다
잘린 목으로
일찍 떨어진 낙엽을
어루만지고 있다
[감상]
어느 가을산, 누군가 고사를 지낸 모양입니다. 그곳에 버려진 돼지머리, 이 풍경을 통해 시인은 깊이 있는 직관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상상력이 발휘되기까지 체험으로 체득한 소산들은 고스란히 시적 배경이 됩니다. 그리하여 돌아보면, 죄다 시의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