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게 배우다』/ 맹문재/ 실천문학사
물고기에게 배우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감상]
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의 길을 통해, 우리의 길이 어떠한가를 되짚어보게 하는 시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의 깨달음을 담보로 합니다. 진솔한 울림이 이 시에 배여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주는 시의 순수 기능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제 삶의 지느러미를 가지고 우린 또 어디로 길을 내는지, 밖은 햇살 충만한 수족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