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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잠 속의 모래산』/ 이장욱 / 『민음사』



        편집증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는 나무



        밤새도록 점멸하는 가로등 곁,
        고도 6.5 미터의 허공에서 잠시 생장(生長)을 멈추고
        갸우뚱히 생각에 잠긴 나무.

        제 몸을 천천히 기어오르는 벌레의 없는 눈과
        없는 눈의 맹목(盲目)이 바라보는 어두운 하늘에 대하여,
        하늘 너머의 어둠 속에서 지금
        더 먼 은하(銀河)를 향해 질주하는 빛들에 대하여,

        빛과, 당신과, 가로등 아래 빵 굽는 마을의
        불 꺼진 진열장에 대하여,
        그러므로 안 보이는 중심을 향해 집요하게 흙을 파고드는
        제 몸의 지하(地下)에 대하여.

        텃새 한 마리가 상한선(上限線)을 긋고 지나간 새벽 거리에서
        너무 오래 생각하는 나무.


[감상]
아마도 나무가 생각에 잠기고 그 길가에 서 있었다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이 시는 그런 상상력으로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우주로 탁 트인 "더 먼 은하를 향해 질주하는 빛들"이나 나무의 무게와 흙과의 관계를 표현한 "안 보이는 중심을 향해 집요하게 흙을 파고드는/ 제 몸의 지하(地下)"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나에게, 이 시가 주는 매력이란 '자네 생각 좀 하고 사나?'란 물음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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