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눈」/ 전동균/ 『문학과 경계』 2002년 겨울호
주먹 눈
눈 내리는 밤, 야근을 하고 들어온
중년의 시인이
불도 안 땐 구석방에 웅크리고 앉아
시를 쓰는 밤, CT를 찍어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편두통에 시달리며
그래도 첫 마음은 잊지 말자고
또박또박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
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
퍼붓는 주먹 눈,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든 金宗三이 걸어와
불쑥, 언 손을 내민다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 잔 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 줘, 그게 시야!
[감상]
이 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온몸으로 시를 쓰는 것이 어떤 것인가, 무엇이 시인가에 대한 자세를 이끌어냅니다. 지난주에 정현종 시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열심히'이라는 말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군요. 평범한 말 같지만 그 안 치열성과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골방에 들어앉아 머리로 쓰는 시보다 가슴으로 쓰는 시가 얼마나 절실한가 다시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