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뻐꾸기」 / 배홍배 / 『현대시』2003년 7월호
광릉 뻐꾸기
광릉 숲에 뻐꾸기가 운다
슬프게도 운다
뱁새가 품고 있는 알 하나가 꼼질한다
그들은 지금 교신 중
재개발 아파트 같은 원시림은
집단 무의식처럼 침묵한다
젊은 뻐꾸기들이여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태아가 부여받을
고통의 새 주소를 찾는구나
입주 딱지 같은 낙엽 한 장이 전부인
쓰러져 가는 고목 안에서
너희 조상이 물려 준 삶의 암호를
양심의 깃털이 돋기 전
연약한 잔등에서 피가 나도록
견디어 낼 거라면
내 벌거숭이 몸뚱이를 내어주마
밟고 오르라
내 온 몸이 털로 덮이고
귓속에서 검은 뿔이 숭숭 자라
저 울음의 메시지를 수신할 때까지
아픔은 나의 것이 아니니
[감상]
뻐꾸기의 생태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뻐꾸기는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낳습니다. 그리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둥지 안의 가짜 어미의 알과 새끼를 등에 얹고서 둥지 밖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 둥지를 독차지합니다. 이 시는 그러한 습성을 '조상이 물려 준 삶의 암호'로 풀어내며, 더 나아가 뻐꾸기처럼 살고 있는 우리시대의 누군가에게 '밟고 오르라'라는 강한 목소리를 등장시킵니다. 이렇듯 뻐꾸기의 삶을 코드화시킨 악마적 요소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