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광릉 뻐꾸기 - 배홍배

2003.07.15 10:38

윤성택 조회 수:1018 추천:198

「광릉 뻐꾸기」 / 배홍배 / 『현대시』2003년 7월호


        광릉 뻐꾸기


        광릉 숲에 뻐꾸기가 운다
        슬프게도 운다
        뱁새가 품고 있는 알 하나가 꼼질한다
        그들은 지금 교신 중
        재개발 아파트 같은 원시림은
        집단 무의식처럼 침묵한다

        젊은 뻐꾸기들이여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태아가 부여받을
        고통의 새 주소를 찾는구나
        입주 딱지 같은 낙엽 한 장이 전부인
        쓰러져 가는 고목 안에서
        너희 조상이 물려 준 삶의 암호를
        양심의 깃털이 돋기 전
        연약한 잔등에서 피가 나도록
        견디어 낼 거라면
        내 벌거숭이 몸뚱이를 내어주마
        밟고 오르라
        내 온 몸이 털로 덮이고
        귓속에서 검은 뿔이 숭숭 자라
        저 울음의 메시지를 수신할 때까지
        아픔은 나의 것이 아니니



[감상]
뻐꾸기의 생태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뻐꾸기는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낳습니다. 그리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둥지 안의 가짜 어미의 알과 새끼를 등에 얹고서 둥지 밖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 둥지를 독차지합니다. 이 시는 그러한 습성을 '조상이 물려 준 삶의 암호'로 풀어내며, 더 나아가 뻐꾸기처럼 살고 있는 우리시대의 누군가에게 '밟고 오르라'라는 강한 목소리를 등장시킵니다. 이렇듯 뻐꾸기의 삶을 코드화시킨 악마적 요소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1 신호 - 최정숙 2003.11.17 1032 164
110 가랑잎 다방 - 황학주 2009.11.11 1031 133
109 합체 - 안현미 2010.01.06 1029 146
108 오래된 부채 - 천수호 2003.03.20 1029 199
107 도둑 - 유정이 2003.01.15 1029 185
106 목공소 - 고경숙 [1] 2004.01.15 1028 184
105 주먹 눈 - 전동균 2003.03.03 1028 186
104 사과를 깎으며 - 김나영 2003.05.26 1027 151
103 태양의 칸타타 1 - 이윤훈 [1] 2002.12.05 1027 169
102 붉은별무늬병 - 홍연옥 2003.07.31 1026 181
101 실종 - 한용국 2003.06.02 1025 157
100 하수구의 전화기 - 김형술 2002.10.04 1025 204
99 편집증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는 나무 - 이장욱 2003.01.21 1022 188
98 석모도 민박집 - 안시아 2003.05.21 1021 155
97 사슴농장에 대한 추억 - 윤의섭 2002.07.05 1021 187
96 물고기에게 배우다 - 맹문재 2002.11.16 1020 168
95 산 하나를 방석 삼아 - 이정록 2002.10.31 1020 173
94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2002.06.24 1020 162
» 광릉 뻐꾸기 - 배홍배 2003.07.15 1018 198
92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 이진명 2003.05.27 1018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