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별무늬병」/ 홍연옥/ 『제5회 시산맥상』당선작
*붉은별무늬병
버려진 반편이네 배밭으로
붉은 별들이 내려앉았다
자리다툼에 밀려
이켠까지 건너온 별들의 수런거림
한낮의 햇살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이파리 이파리들이 다 밤하늘이다
무슨 병명이 그리도 천진하여
어린 열매들은 별축제라도 가는 양
저마다 얼굴에 붉은 별을 달고
가위 잇새로 여린 목을 드리우는데
멍든 밤하늘 속 별들을 뒤지는 내 가슴엔
붉은 은하수가 녹물처럼 흘렀다
하소연이나 해 볼까 찾아갔던 반편아비는
농토를 버린 죄로 허리를 다쳐
구들짱 가득 비린 신음만 토해내고
가을날 흉작 같은 눈기슭에는
샛강이 움찔 놀라 별똥별로 떨어지는데
그의 뒤편 저장고에는
지난 해 팔리지 않은 배들이
아직도 썩어가고 있었다
마흔이 다되도록 아이 티를 못 벗은 반편이는
젖은 마당을 깔고앉아 흙글씨를 쓰고
때가 되어도 영글지 않는 빈 살갗에는
흙물이 별이 되어 박혀 있는데
사람 구실 못할라믄 나오덜 말 것이제
반편짜리 인생이 목구멍에 그렁거려
차마 하늘길이 스스로 돌아가더라는
멍빛 흥건한 반편아비의 가슴에
피톨처럼 부유하는
저 붉은별무늬 박테리아
*붉은별무늬병 : 일명 적성병(赤星病)
사과나무 배나무 등의 잎과 열매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병
[감상]
붉은별무늬병을 일상의 것으로 바꾸는 솜씨는 체험에서 우러나지 않는 한 형상화할 수 없는 발견이지요. 그런 면에서 좋은 포착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배밭으로/ 붉은 별들이 내려앉았다'라는 전염의 형태를 서정과 맞물려 놓은 시도는 남다른 장점이고요. 과수원에서 사과, 배들과 함께 삶을 꾸리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이처럼, 詩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신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