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무늬』/ 최정숙/ 북갤럽
신호
횡단보도에 대기중인 눈발들
어디로 보낼 것인가
이 안내장들,
축제처럼 쌓이는 인삿말들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열아홉이나 스물,
신호에 걸려 멈춰 있던 그때
나를 보낼 곳이 한 군데도 없던 그때에도
이렇게 멈칫거렸었다
눈 오는 밤은
누구나 짐승처럼 울게 할
신호 체계를 가진 모양이다
밤 밖으로 밀려나는 눈발들
새로운 예감으로
다시 열린 축제의
이 안내장들
어디로 보낼 것인가
[감상]
감성적인 흐름이 좋습니다. 대관령인가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눈발들이 곧 이곳에도 도착할 것입니다. 눈을 바라보던 설레임의 순간들, 열 아홉이나 스물에 느꼈던 그 감정 속에는 예측 못할 불안한 청춘이 있었습니다. 그렇듯 눈은 이제 누군가의 새로운 예감으로 내리고, 화자는 그 과거를 회상하며 눈오는 밤을 바라봅니다. 마음이 들떠서 가라앉지 않는 것. 그 안에는 이렇듯 아련하고 막막한 신호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