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포 노인」/ 최을원/ 『시현실』2003년 가을호
자전거포 노인
노인의 손이 닿자 어린 자전거가
신음을 베어 문다 굳은 나사를 틀어
바퀴를 빼내는 노인, 타이어 찢긴 틈으로
고샅길들이 비어져 나와 있다 전봇대들이
취한 눈알을 부라린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욕설을 닦아낸 후 상처를
찬찬히 싸매 주는 노인,
비틀린 틀을 곧게 펴고 날카롭게 굽은
바퀴살을 하나하나 펴준다
날카로울수록 약한 법이지, 나사를
단단히 조이고 힘있게 펌프질하자 자전거
깡마른 몸에 탄탄한 근육이 부풀어오른다
축 늘어진 체인을 손본 후 페달을 돌리자
자전거가 된 숨을 토해낸다 고개 숙인 핸들을
툭툭 쳐보는 노인, 이런 것은 치욕이란다,
노인의 팔뚝에서 힘줄이 꿈틀하자 자전거
굽은 등뼈가 꼿꼿해지며 숙였던 고개가
세상 한가운데를 향해 슬며시 들린다 그러자
라이트 속에 멈춰져 있던 사람들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차해 있던
트럭이 벌컥벌컥 출발하고 수족관의
생선들이 펄떡인다 짐받이에
집 한 채 실은 자전거가 세상 속으로
질주해 간다 도시의 먼 휘어진
길을 돌 때까지 자전거
어깨에 노인의 커다란 손이 얹혀 있다
[감상]
사물화(死物化) 되어버린 자전거가 노인의 손을 거쳐 하나의 생명체로 재탄생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특히 말미 '라이트 속에 멈춰져 있던' 풍경이 자전거와 더불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시원스런 카타르시스를 주네요. 아무래도 좋은시는 희망이나 삶의 의지나 새로운 존재를 인식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