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접열 - 권영준

2003.11.04 12:08

윤성택 조회 수:1008 추천:186

「접열」/ 권영준/ 현대시 2003년 11월호 이달의 시인 中



        접열(接悅)


        흔들리는 측백나무에
        자연사랑 팻말을 달기 위해
        대못을 박았다
        벌겋게 발기한 못이
        틈새로 사정없이
        제 온몸을 밀어 넣자
        속절없이 몸을 여는 나무

        못대가리는 나이테 가장 깊숙한
        자궁을 찾아
        단단히 들러붙었다
        측백나무가 접열을 이기지 못해
        파란 수액을 토해내자
        새봄이 왔다

        팻말의 글자는 다 지워졌지만
        못대가리를 꼭 끌어안은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감상]

측백나무와 대못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미묘한 차이를 이처럼 자연보호 푯말로 드러내다니 경이롭습니다. 마지막 연의 '팻말의 글자'가 다 지워져도 '못대가리를 꼭 끌어안은 나무'의 부분에서 마음이 애틋해집니다. 정작 못질의 용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보호'였으나, 그 '자연보호'조차 지워져 버린 오랜 시간 후에도 측백나무는 팻말을 끌어안고 있군요. 예전에 보았던 멜로영화 같았을까요. 뒷골목 삶을 살던 그가 그녀를 만나 강제로 사랑을 하고, 그녀에게 매료된 그는 이제 착한 사람이 되고, 그들에게도 봄은 오고, 어느날 남자들이 찾아와 그에게 과거로 되돌아가자고 하고,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과거와 격투 끝에 그가 죽게 되고, 그리하여 남은 여자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뱃속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1 누가 내건 것일까 - 장목단 2003.04.22 1018 152
90 음풍 - 박이화 2003.12.12 1016 201
89 지하도에서 푸른 은행나무를 보다 - 서안나 2003.06.16 1016 164
88 구름, 한 자리에 있지 못하는 - 이명덕 2003.03.17 1016 179
87 내 그림자 - 김형미 2011.01.14 1014 84
86 적(跡) - 김신용 2002.09.06 1013 172
85 자전거포 노인 - 최을원 2003.09.03 1012 166
84 사라진 도서관 - 강기원 2010.01.21 1011 106
83 나무의 손끝 - 신원철 2003.05.23 1010 167
82 내가 읽기 전엔 하나의 기호였다 - 고현정 2002.12.30 1009 180
» 접열 - 권영준 2003.11.04 1008 186
80 공사장엔 동백나무 숲 - 임 슬 [1] 2002.11.07 1008 167
79 다대포 일몰 - 최영철 2002.06.26 1007 180
78 영자야 6, 수족관 낙지 - 이기와 2002.06.03 1007 182
77 어물전에서 - 고경숙 2002.11.19 1005 180
76 부리와 뿌리 - 김명철 [1] 2011.01.31 1004 109
75 산란2 - 최하연 2003.11.27 1004 178
74 목단꽃 이불 - 손순미 2003.04.15 1004 149
73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72 무덤생각 - 김용삼 2003.01.23 1000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