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풍」/ 박이화 / <시와사상> 2003년 겨울호
음풍
- 내 사주 일지엔가 월지에
초경처럼 부끄러운 도화살 -
바람난 시인들로
세상이 술렁인다
바람은 모태 적부터의 내 신앙
신성불가침의 내 詩의 영역
하여, 내 詩도 이미 바람나
풍문으로 전전한지 오래
허나, 누구도 내 뒤를 밟지 마라
알몸으로 뒹구는
낯뜨거운 내 詩의 현장을 덮치지 마라
나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다
다시 말해
나 아직 <조-옷>같은
시 한 편 건지지 못했다
죽어서도 벌떡, 벌떡 살아나는 그것처럼
일생 나를 까무라치게 혼절시킬
그런 기고만장한 시 한 편 만나지 못했다
[감상]
도화살이라는 모진 기운을 상정하고, 詩 창작의 치열함을 남녀의 성에 관한 풍조로 풀어낸 시입니다. 소제목의 은유가 전체를 받쳐주는 모양이 그러하듯, 詩가 얼마나 내밀한 욕망의 끝에 존재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시에 대한 기대치를 빗댈 수 있는 통속이 인상적입니다. '통속적'이라는 말은 해석 그대로 겉과 속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시는 그렇게 통해 있습니다. 여성성에 관한 적절한 여유가 여느 여성시와는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