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메시지」 / 김다비 / 『문학사상』6월호 신인상 수상작 中
낙마(落馬) 메시지
더 싱싱한 연애를 위해
식솔들을 다 떠나보낸 겨울 나무
중심에 굵은 수맥이 흐르고 있다
어느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도 온몸이 욱신거렸으나
치열하게 살아 있기 위해선
무언가 한 가지쯤은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했다
여전히 두근두근 숨쉬고 있는
옆구리를 뚫고 지나간 애벌레의 두근거림
처음 여자를 알았을 때처럼
전신을 관통하는 듯한 전율이 나를 마지막 잎새로 남겨두었다
있는 힘 다해 푸르렀던 한때
바람이 귓불을 간질일 때면
우주 전체가 내 안에서,
눈부신 황금나비의 날갯짓으로
서로 짝을 맞춰 치달아 오르던, 한때는
어떤 애인도 부럽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맨 처음부터 내 몸속에도
불길한 전운이 감도는 수맥이 흐르고 있었던 것인데
고통의 밑바닥을 애써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을 뿐
이제 제 뿌리가 가늠할 수 있는 곳까지만
가지를 뻗는 겨울 나무를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행복했다
손을 놔버리는 그 순간이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가 새싹이 돋는 건 아니다
[감상]
나무의 잎새를 '연애'의 시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시를 이끌고 있고, 연애에 대한 감정 또한 곳곳에 배여 있습니다. 나무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연애를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이런 병치의 효과가 시의 깊이를 받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한 겨울 바싹 마른 잎을 가지의 손에서 놔주는 것. 아픈 이별에 대한 '행복했다'는 말. 상처의 당신에게 베푸는, 오늘 싱싱한 연애를 위해 저 푸른 나무들이 한껏 흔들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