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전윤호 / 하문사 (2002년 제7회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황실대중사우나
상심한 자들은 새벽 다섯 시에 목욕탕으로 모인다
비단구렁이가 허물을 벗듯
온몸에 선명한 상처
밤새 이별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증막에서 이 악물고 견디다
샤워기 밑에서 눈물 흘린다
양치질하다가 구역질하는 자도 있다
축 늘어진 성기를 드러내고
발톱을 깎는 외로움
수건 한 장 걸치고 잠이 들리라
햇볕이 들지 않는 수면실에서
부활을 믿는 파라오처럼
새벽 다섯 시 목욕탕에선
어떤 절망도 어렵지 않다
[감상]
아이러니하게도 '황실'에서 보게 되는 사람은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별과 이별, 어쩌면 그 사이를 헤어나와 새벽 다섯 시 그곳에 모였는지도 모릅니다. 현대인의 쓸쓸한 정조와 함께 숙취 후 밀려오는 나른함, 그리고 절망을 겯뎌내는 生의 의지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