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다리 / 송재학 / 『문학사상』2003년 1월호
무너진 다리
한번도 구부리지 못한 등이 아팠기에,
구부리지 않으려는 마음이 먼저였지만
다리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네
강물이 지느러미뿐일 때가 가장 싫다는
저 교각류(橋脚類)의 신음소리는 길고 무겁다
떠밀려온 쓰레기들이
물의 힘줄과 엉키면서 몸에 감긴 여름 내내
소리소리 지른 것은 자신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는 다리,
그때도 강은 다리쯤이야 금방 부수겠다는 듯이
품앗이꾼 흙탕물을 앞세웠다네
이상하지, 균열이란 내부의 논리라는 데 동의하고
제 몸을 소등(消燈)하면서 생긴 커다란 구멍을 재빨리 메꾼
매서운 바람, 또 그 일가(一家)가 되고만
자신의 사라져가는 생에 대해
다리는 고개를 끄덕인다네
[감상]
* 송재학 시인의 '시작메모'로 대신합니다.
「지난 여름 태풍 때 고향마을 잠수교에 가까운 콘크리트 다리는 결국 이번 겨울을 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다리는 이름도 없고 볼품도 엇이 그냥 길쭉하기만 했다. 게다가 난간조차 없었다. 무너진 다리를 내 카메라로 찍었다. 필름을 열 통이나 구겼지만 한 장도 제대로 건진 건 없었다. 하지만 흑백필름이었기에 낡고 무너진 다리를 '쓸쓸하다는' 시선에서 볼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