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폭설」/ 홍신선/ 『문학과창작』2003년 2월호
1월의 폭설
대형서점에
톤백으로 쏟아져 나와 쌓인
수천톤 쓰레기들 저 생각의 잡동사니들
때 맞춰 시간의 양각풍(羊角風)에 쓸려내려와
텅빈 담론의 계곡이나
감각의 깊은 하수구에 꽉꽉 쌓이고 처박힌
이 말의 폐기물들
분리수거하듯 망각 속에 내용별로 곧 입고시키지만
부서진 고문서 활자들 주소지를 바꾸지만
깡마른 양어깨 속에
묻힌 유골들 발굴한듯 빗장뼈를 드러내는,
일제히 나무들이 퉁퉁 부은 몸피마다 검은 *촉루를 감추고 섰다
썩음썩음한 공기 속에
오늘은 또 몇 ℓ짜리
쓰레기 봉투들을 하늘은 새로 내다놓는가
나는 나를 내다버리는가
[감상]
마지막 연이 어느 산에서 울리는 쩌렁쩌렁한 메아리 같습니다. 대형서점에 쌓여 있다가 팔리지 않아 버려지는 책들을 이 시는 과감하게 '쓰레기들'이나 '말의 폐기물'로 규정짓습니다. 시인은 아마 1월 폭설이 내리는 길가에서 책 묶음들이 밖에 내 놓여진 풍경을 목도했을 것입니다. 한번도 펼쳐보지 못한 누렇게 색이 바랜 겹겹의 페이지들이 눈발에 젖어 '퉁퉁 부은 몸피'가 되었고, 그 안 살이 전부 썩고 남은 송장의 뼈야말로 '활자'라는 직관을 보여줍니다. 이 시가 좋은 이유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단박에 내지르듯 '나는 나를 내다버리는가'라는 시적 대상과의 밀착입니다. 어쩌면 시인이 써왔던 시들이 그 버려질 묶음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작은 풍경에도 詩로 발견해낼 줄 아는 시인의 눈에 감복합니다.
*촉루 : 인터넷상에는 이 한자가 써지지 않는군요. 뜻은 살이 전부 썩고 남은 송장의 뼈, 즉 해골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