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라고 했니 운명이라고 했니/ 김유선 / 시와 시학사
여자들
입춘(立春)의 여자가 눈을 뜬다
햇살은 순해졌고 그만으로도 배부른 아침,
지난 겨울은 힘겨웠다
30년만의 폭설은 나무를 무릎까지 파묻고
너와의 관계처럼 다시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끼니 끊긴 길 위에 다시 눈 쌓여
어느 기다림도 배달되지 않았다
불면의 바람이 빙판길에 넘어지며
실직한 꿈을 다시 얼렸다, 그러나 이 아침
햇살의 눈부심은 누구의 힘인가
어느 손이 창틀의 묵은 우울을 걷어내고
오색의 무지개를 물잔 가득 담아낸다
아, 설레인다
겨울강 건너온 여자가 눈녹은 두 팔을 주욱 펴고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어제가 아니어서 더 근사하고
올해는 작년이 아니어서 더 근사하고 싶은 아침,
떠났던 새들도 새소식 하나씩 물고 와
엄동삼동 삭막하던 뜰에 씨를 뿌린다
아, 근사하다
여자들이 제 집 앞 어둠을 쓸어내고
별의 묘목을 심고 있구나
[감상]
지금은 화사한 햇볕이 만국기처럼 펄럭이지만, 지난 겨울은 정말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겨울과 봄, 가장의 실직과 우울에서 희망으로 옮겨가는 이미지가 선명합니다. 청소를 하며 건강한 삶을 꾸릴 수 있는 것, 마지막 "별의 묘목"을 심는 행위가 마음에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