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극장에서의 한때』시집이 있음 / 배용제 / 민음사
울고 있는 아이
시장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아이.
울면서도 과자를 먹고, 중고 전자상 티비를 보며 울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울고
생선들이 토막나고, 그릇들이 흥정되고, 앉은뱅이 수레가 지나가고,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겨우 빠져나가고, 땡중이 구걸하고, 그사이 몇 번인가 닭 목이 비틀어지고, 다시 전도사가 지나가고, 튀김들이 익어가고,
모든 걸 구경하는 아이가 울고, 서성이며 울고, 또 울고
공중으로 첫 별이 꽂히고, 바람이 뒤섞인 냄새 사이를 휘청이며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그곳에 서서 아이는 울음이 젖어 연거푸 울고.
세월이 가고,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수염이 돋아나고, 주름이 패이고, 머리칼이 하얗게 바랠 때까지 그저 울고
[감상]
끝에서 위로 두 행을 읽을 때 잠시 전율이 일어납니다. 중경산림이었던가요? 양조위가 어느 가게 의자에 앉아 있는데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왜 갑자기 그 영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울고 있는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이 놀라운 시간성. 번잡한 세상의 삶을 이처럼 간단히 환각처럼 도식화시키다니요. 어쩌면 우리는 이 아이처럼 삶속에서 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주 안에서 본다면 한 계절 여름나무에 붙어 우는 매미의 일생처럼, 나의 짧은 生이 지나갑니다. 2001년 8월 3일 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