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Y를 위하여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 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감상]
최승자 시인의 시세계는 참 독특합니다. 세계에 대한 부정은 결국 세계에 대한 껴안기로 되울림 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욕설로 가득한 시 같이 보이지만, 그 역설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정말 무섭도록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욕"이란 배설의 개념이고, 그 배설은 쾌감이라는 욕망의 근저에 잇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 개새끼/ 못잊어!" 이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