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빗소리 듣는 동안
1970년대 편물점 단칸 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가랑 연애 얘기 하는 것처럼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척 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있게 양푼밥을 누나들은 같이 비볐네
그 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 잡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같은 내 장단지에도 그날, 살이 올랐다네.
[감상]
안도현 시인의 시가 좋은 이유는 대중성과 문학성의 접점을 찾아낸 탁월한 눈에 있습니다. 아이가 성숙하듯이 시도 똑같이 진화의 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는 기형적으로 진화가 되어 난해하고 모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도현의 시는 평론가들의 구차한 눈치를 보지 않고 대중들에게 기꺼이 시의 살점을 나눠줍니다. 이 시는 오늘 같이 비 오는 날, 알싸한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빗소리를 달리 듣습니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이처럼 상식을 배반한 상상력이 드러났을 때 울림이 전해져 옵니다. 지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