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옥평리 - 박라연

2002.08.14 14:23

윤성택 조회 수:1380 추천:244

옥평리/ 박라연/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옥평리


        토요일은 언제나
        옥평리에 갔다 다리를
        건너 철길 논길을 지나서
        수수밭 언덕길 그곳에 가면
        전학 간 순이도 좋았지만
        올벼쌀 메뚜기 홍시감이 좋았다
        혼자서 가는 길 쓸쓸해지면
        눈감고 어디쯤 갈 수 있나 시험하다가
        큰 다리 아래 숨어 흐르는 슬픔 속으로
        뚝, 떨어져 눕던 아득한 그날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에 실려왔지만
        그때 나는 이미 젖어서
        운동화도 머리카락도 흠뻑 젖어서
        지금도 툭하면 젖어서 산다
        옥평리 그 길을 다시 걸을 때
        속눈썹에 감겨 오는 내 살아온 날의
        오솔길 철길 큰 다리 길
        길모퉁이에 남아 있는 쓸쓸한 그림자
        제 그림자를 밟고 떠나가는
        눈뜨고 가는 길도 안 보이는 우리들
        우리들 살아서 사는 길


[감상]
추억이 살고 있는 시입니다. 조금 외진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누구나 한번쯤 연상되는 풍경이네요. 그래요, 살아서 지금 내가 살아서 옛 그곳에 가면 추억이 한창 상영중일 겁니다. 잔잔하면서 유년의 풋풋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아쉬워서 한 번 더 읽어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11 골목 - 박판식 2002.08.05 1521 194
910 소쩍새에게 새벽을 묻는다 - 심재휘 2002.08.07 1162 233
909 달1 - 박경희 2002.08.08 1503 241
908 단체사진 - 이성목 2002.08.09 1482 229
907 별 - 김완하 2002.08.12 2923 249
» 옥평리 - 박라연 2002.08.14 1380 244
905 매화 - 최승철 2002.08.22 1468 212
904 알레르기 - 장성혜 2002.08.27 1201 206
903 환청, 허클베리 핀 - 김 언 2002.08.30 1177 233
902 이별 후의 장례식 - 김충규 2002.08.31 1217 205
901 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2002.09.02 1121 219
900 심야 배스킨 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2002.09.03 1162 202
899 쿨럭거리는 완행열차 - 송종규 2002.09.05 1062 179
898 적(跡) - 김신용 2002.09.06 1013 172
897 사진1 - 이창호 2002.09.09 1230 190
896 다비식 - 신용목 2002.09.13 1071 219
895 유년 - 정병근 2002.09.16 1060 189
894 러브 어페어 - 진은영 2002.09.17 1298 194
893 산은 넘는 자의 것이다 - 정숙자 2002.09.18 1159 205
892 단추 - 박일만 2002.09.19 1297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