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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 최승철

2002.08.22 16:46

윤성택 조회 수:1468 추천:212

제2회 섬문학상 당선작/ 최승철/ 2002 『작가세계』로 등단


        매화

        발가락부터 숨결 조율하며
        애벌레 한 마리 나뭇가지 뚫는다
        작은 몸짓이 빈 공간을 움직이며
        생의 한 가운데 자신이 놓여있음을 깨닫는다
        몸 움츠리자 아침 공기 토돌하게
        솜털에 허공이 닿는다 음미하는 쪽이
        허공인지 솜털인지 구분하지 않아도
        뜨거운 열기 물관 타고 전해지면
        오후 가득 얼굴 붉어진다
        내부에 나이테 켜켜이 쌓여
        애벌레는 팽팽한 사방을 밀며 꽃자리 만든다
        꽃잎에 뭉쳐진 봄밤이 자란다
        애벌레 꼼지락거리며 지나가는 자리마다
        나뭇가지에 세월이 묻어 나온다
        몸 밀어내는 공간만큼 서둘러 붉어진 꽃잎은
        일찍 그 빛을 잃을까 달빛이 숨을 내쉰다
        솜털 오돌하게 찔린 별빛에서
        벌레의 낮은 숨소리 봄밤 가득 아련하다
        우듬지까지 간 벌레의 발자국이
        하나씩 하늘 오르자 애벌레의 움직임이
        나비처럼 차안과 피안의 경계 가리지 않는다


[감상]
매화가 피는 과정과 애벌레의 움직임이 잘 묘사된 시입니다. 그 작은 움직임을 통해 우주와 세계의 운용, 철학에까지 이르는 확장된 시적 정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시가 더욱 견고하게 느껴집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 작은 것들이 이처럼 세상을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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