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리토피아』가을호(2002)
틀니가 자라는 폐가
서른 개의 울타리가 삐걱거리는 폐가 안쪽에, 그만 神이 들어섰네
왼쪽 잇몸 끄트머리부터 죽은 대나무가 주루룩 종유석처럼 자라났
네 그때부터 폐가에서는 구멍 뚫린 창호지 사이로 설익거나 부패한
영혼들이 새어나왔네 바람이 불 때마다 박제된 누런 혼들이 펄럭거
렸네 아무도 없는 폐가에서는 가끔 염불소리가 들리고 향 피우는 냄
새가 났네 밤마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네 약 한첩 못쓰고 죽은
동자신이란 말도 돌고 겁탈당해 죽은 열아홉 처녀신이란 말도 돌았
네 돌면 돌수록 폐가는 밑을 벌린 미궁이 되어갔네 잠잠하다싶으면
폐가는 나 보라는 듯 곡을 했네 날카로운 곡소리는 귓구멍을 쑤셔댔
네 숨구멍을 쑤셔댔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 마침내 굿이 열렸네
이젠 됐다며, 깔깔거리며 웃는 얼굴들의 입구멍에서 슬금슬금 수상
한 바람이 기어나왔네 작두를 타는 늙은 무녀에게 神이 들리자 갑자
기 천장 네 쪽에서 철커덩, 쇠틀이 씌워졌네 쇠틀에 갇힌 神, 오늘도
오물오물 혼을 삼키고 있네 세 살배기 손자의 귀를 잡고 이 오래된
얘기를 들여주고 있네
[감상]
이런 마을의 폐가를 본 적 있습니다. 밤마다 들리는 이상한 소리 때문에 그곳에 새로 이사온 사람들도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떠나갔습니다. 어쩌면 소문이 그 집에 머물며 주인 행세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시에 서려 있는 운율이 마치, 혼잣말처럼 서늘하다는 느낌입니다. "세 살배기 손자"부분에 이르러서는 혼의 전이轉移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딸랑딸랑 종을 치며 소곤소곤 혼잣말하는 섬뜩함, 우리가 들어야할 몫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