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문예공모 당선작 中 / 조동범/ 『문학동네』가을호(2002)
심야 배스킨 라빈스 살인사건
투명한 냉동고의 서늘함 속에 꽃잎처럼 피어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는
천천히 꽃잎을 지우고 있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은 무료하게 손톱을 만진
다.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에선 빠른 템포의 음악만이 빈 공간을 메
우고 있다. 판매원은 자신의 손을 뺨으로 가져간다. 냉동고의 서늘함이 판
매원의 뺨 위에서 얼음처럼 부서진다. 냉동고에 손을 넣을 때마다 판매원
은 살의를 감지한다. 냉동고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판매원은 생각한다.
마감을 넘긴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밤이 깊어질수록 아이스크림 판
매점은 더 밝고 서늘해져.
거리의 사람들은 빠르게 심야로 흘러간다. 판매원의 좁은 미간이 예리
한 주름을 만든다. 냉동고의 모서리에서 은빛 조각이 서늘하게 빛난다. 아
이스크림 판매점은 평화롭게 심야를 맞고 있는 중이다.
평화롭게 심야가 다가오고,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평화로운 살의
로 가득 찬다. 평화로운 살의를 가로질러 판매원은 냉동고 속으로 빨려 들
어간다. 냉동고에서의 죽음. 판매원의 마지막 온기는 수증기를 만들어 냉
동고의 덮개를 가린다. 판매원은 희미하게 사라지는 냉동고 밖의 세상을
바라본다. 푸른 낯빛을 하고 서늘하게 누워있는 판매원은 고요해 보인다.
꺼지지 않은 간판만이 심야를 밝혀주는,
은빛 조각 서늘하게 빛나던 심야 아이스크림 판매점,
위로 하현달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깊고 깊은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감상]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최종 2편중 당선작을 가리는 심사평 중 이 시에 관해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심야의 적요가 삶의 무심한 표징과 어울리면서 섬뜩한 풍경을 빚어낸다…(중략)…그럼에도 선뜻 당선작으로 밀지 못한 것은 그 풍광이 만들고 있는 지극히 어두운 시선과 분위기 때문이었다" 말인 즉,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당선작으로 뽑지 않았다는 것인데…그 후 이 시를 문학동네 당선작 중에서 보게 됩니다. 이 시인은 아무래도 "이미지"에 관해서 만큼은 긴 촉수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치 냉동고에 하얗게 서리 낀 한 남자의 시신을 오래도록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