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 이창호/ 『문학과 의식』가을호(2002)
사진1
한 때는
우리의 삶도 흑백이었던 적이 있었지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펼쳐든 사진첩에는
석탄이전의 원탄(原炭)처럼 주렁주렁
단내 나는 풍경들
한 장의 낡은 종이 두께 속에서 꼬깃꼬깃
어린 시절이 접혀있는 동안,
나는 골방에 들어앉아 한 삽 두 삽
흑백의 그리움을 삽질해왔었다.
난로 속에 넣으면, 검은 속살을 뒤집으며
금방이라도 하얗게 현상(現像)될 듯,
표정, 표정들 눈빛 아래 아직도
뜨거운 얼굴들인데,
이미 종이 안에 박혀 화석이 된 과거사(過去事),
눈물조차, 웃음조차,
노랗게, 파랗게, 빨갛게 다양해진 지금
더러는 가슴 속 저탄장(貯炭場)에 쌓이고
더러는 활성탄(活性炭)이 되어 혈관 속에서
색감 없이 타오른다.
아무도
컬러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세월에도 씻기지 않은 내 유년(幼年)이
광산(鑛山)의 꽃처럼 피는
사진 속에서.
[감상]
흑백사진은 추억의 힘으로 색이 바래나 봅니다. 그래서 어쩌면 사진은 추억의 증명서일지도 모릅니다. 탄광지역에서 자란 화자가 읽어내는 풍경은 흑백이지만 비유나 흐름이 온통 천연색입니다. 아쉽게도 저는 흑백사진에 찍힌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나"였다고 일러주었기 망정이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사진 속을 걸어나와 제 길을 갑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시처럼 꽃씨를 보듬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