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박일만/ 『시문학』등단
단추
구름무늬 몸 속에 새긴 맑은 단추 한 알, 파계를 모르는 둥근 습성으로
은하계를 건너간다 달 같기도 하고 마음 한켠에 담아둔 얼굴 같기도 한,
닮은 것이 많은 몸 굴러간다 맨 몸으로 구멍 드나들며 하루를 조였다 놓
았다 시간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낙천성이 온 몸에 곁 붙어 몸 만하게
입벌려 웃고 사는 녀석, 알같은 몸으로 은하계 속 누비며 산다 일정한 궤
도로 구르며 제 몸을 지키는 것이 꿴 것인양 보이지만 불법체류를 일삼
는 다수의 주장에 불참하며 굴러간다 구르며 우주에 담긴 추상적인 문양
을 몸 속에 채색한다 맑은 얼굴에 빛살 넣고 달려가는 둥근 몸을 바람이
회오리치며 뒤따른다 다리도 없는, 몸이 온통 다리인, 둥글게 걷는 다리
가 리듬을 타고 커브를 부드럽게 질주하며 몸만한 외눈으로 세상을 정조
준 하는 놀라운 태생, 자전하는 상념에도 무늬가 피는 녀석, 파란 은하계
를 찢고 하얀 꼬리를 남기는 제트기도 아닌 몸이 구를 때마다 출렁이는
불립문자가 된다 일정한 몸체의 공중돌기, 본질은 꿴 것 같지만 실상은
구르는 것 탈색을 모르는 몸빛으로 살아간다 반환점도 없이 도는 둥근
지느러미가 세상빛을 조용히 닮아가는 단추 한 알, 멈춰 있어도 바삐 돈
다
[감상]
요즘 시를 읽으면서 염두해 두는 것은 "무엇이 새로운가"입니다. 상식을 깨고 틀을 깨고 삶의 다른 이면을 통찰해내는 그런 시, 열심히 찾아 읽고 있고 또 그런 시가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이 시는 놀랍게도 단추에서 은하계를 발견해냅니다. '둥근 습성'을 파고드는 예리한 직관이 끝까지 긴장감 있게 펼쳐져 인상적인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