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가을날 - 이응준

2002.09.26 10:54

윤성택 조회 수:3600 추천:259

     가을날 / 이응준/ 시집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1995, 고려원)                  

            가을날

        
             그전에 날아갔던 새들이
             벙어리가 되어 돌아와
             길과 거리에 온통 엎드려 누웠다
             나는 그 목홍빛으로 낙엽 된
             새들의 길을 걷는다
             바스락거리며 으스러지는 새들의 흰
             날개뼈를 밟으며 희망의 나라로 간다
             꽃들도 불과不姙에 시달리고 무지개는
             구름 밑에 잠들었던 지난날
             모두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가던 길을
             되돌아왔었지만, 어느새 우리가
             잠 못 드는 그리움으로 거름 주었던 잡풀들이
             울창한 숲이 되었다
             지난 해 새들이 내 상한 다리뼈 디디고
             멀리 날아갔었다는 슬픈 이야기
             아침해 비치는 광장에서 일제히 날아가 버리고
             거리에 바람 따라 뒹굴며 쓸쓸했다는 말들도
             자꾸 머리만 아프게 했다


[감상]
낙엽이 날개뼈라니요. 이 상상력에 잠시 숨을 고릅니다. 역시 잘된 시는 상식을 배반한 채 의미를 재해석합니다. 가을날, 누가 당신의 갈비뼈를 밟아올까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891 뒤통수- 장승리 2002.09.23 1140 208
890 음암에서 서쪽 - 박주택 2002.09.24 1086 240
889 숨쉬는 일에 대한 단상 - 이가희 2002.09.25 1218 219
» 가을날 - 이응준 2002.09.26 3600 259
887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 박성우 2002.09.27 1268 225
886 섬 - 최금진 2002.09.30 1554 219
885 냇물이 풀릴 때 - 박옥순 2002.10.01 1186 209
884 하수구의 전화기 - 김형술 2002.10.04 1025 204
883 집 - 이기철 2002.10.07 1447 211
882 용설란 - 최을원 2002.10.08 1120 218
881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 박찬일 2002.10.10 1112 232
880 근미래(近未來)의 서울 - 이승원 2002.10.11 1063 208
879 우체국 계단 - 김충규 [1] 2002.10.14 1310 192
878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 김명인 2002.10.15 1359 227
877 편지 - 송용호 2002.10.16 1693 213
876 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1] 2002.10.17 1572 214
875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1 - 박현수 2002.10.18 1298 209
874 수선화 - 이재훈 2002.10.22 1190 205
873 생의 온기 - 김완하 2002.10.23 1303 192
872 벚나무, - 강미정 2002.10.24 1352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