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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1 - 박현수

2002.10.18 14:47

윤성택 조회 수:1298 추천:209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박현수/ 청년정신(92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1
                - 유예


        좀처럼 오지 않던
        154번 버스 같은 우리의 이별은
        한 번은
        무너지는 탑처럼 어깨를 치리라
        그 해 겨울,
        유예를 계산하던
        나의 관습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녀는
        나의 손금에서 불안을 읽어내고 있었다
        도깨비풀처럼 몸에 붙는
        백야의 그 지리한 대화를 우리는
        몰래 털어내고 싶어했지
        그 때 뿔뿔이 떠난
        우리들의 사색이 다다른 곳은 어디였을까

        그 해 겨울,
        우리 사랑은
        길가 도랑에 쓰러진 채
        기억의
        헛바퀴만 굴리고 있었으니
        사랑이 더 이상
        생을 감당하지 못 할 때
        154번 버스는 떠나가는 것이다




[감상]
좋은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도 시 속에 배여 있는 향기가 은은합니다. 이 시를 읽으면 알 수 없는 묘한 이끌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예'라는 시어 때문이었을까요. 이렇게 자꾸만 이 계절에 미련이 드는 이유는 불안, 사색, 사랑, 기억이 낙엽만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154번 버스에 휩쓸려 한바탕 흐려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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