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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온기 - 김완하

2002.10.23 17:18

윤성택 조회 수:1303 추천:192

『네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인다』/ 김완하/ 문학사상사




        생의 온기



        더러는 아픈 일이겠지만
        가진 것 없이 한겨울 지낸다는 것
        그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스스로를 버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눈 씻고 일어서는 빈 벌판을 보아라
        참한 풀잎들 말라 꺾이고
        홀로의 목마름 속
        뿌리로 몰린 생의 온기,
        함박눈 쌓이며 묻혀 가는 겨울잠이여
        내가 너에게 건넬 수 있는 약속도
        거짓일 수밖에 없는 오늘
        우리 두 손을 눈 속에 파묻고
        몇 줌 눈이야 체온으로 녹이겠지만
        땅에 박힌 겨울 칼날이야 녹슬게 할 수 있겠는가
        온 벌판 뒤덮고 빛나는 눈발이
        가진 건 오직 한줌 물일 뿐이리
        그러나, 보아라
        땅 밑 어둠 씻어 내리는 물소리에 젖어
        그 안에서 풀뿌리들이 굵어짐을
        잠시 서릿발 아래 버티며
        끝끝내 일어설 힘 모아 누웠거늘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감상]
어쩐 일일까요,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내 안 보일러가 쩔쩔 끓습니다. 뜨거운 피가 팔뚝이나 허벅지 그 어디 심줄을 관통하여 냉장고라도 들고 싶습니다. 그랬었구나, 우리가 함께 갔던 겨울 여행,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그 마당에 벌렁 누워 그리 당당했었구나. 청춘에 데인 상처, 뜨거운 꽃이 되어 끝끝내 나를 데우고 세상을 데워 죄다 아랫목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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